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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시기/전통주

찬바람 불땐 미떼, 봄바람 불땐 면천 두견주?

by 영육이네 2023. 4. 24.

 

친정에서 먹은 면천 두견주. 상 위에서 대충 찍었다가 남편한테 잔소리 들었다. ㅎㅎ

 블로그를 하면서, 위스키 위주의 포스팅을 좀 하다가 언젠가 때가 되었다 싶을 때 럼이나 꼬냑, 진 등 다른 술로 넘어가야지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워낙에 위스키 포스팅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위스키가 다양하고 할 얘기도 많고, 가지고 있는 술도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친정집에서 두견주를 먹은 후로는 완전히 마음이 바뀌었다, 이건 지금 포스팅 해야해!

 

 서울에 있는 친정집을 방문하기 전에 오랜만에 상경한 우리 부부는 잠실에 새로 문을 열었다는 보틀벙커에 방문했다. 보틀벙커에 방문한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할까 하며 아껴두고.. 화려한 위스키, 와인 라인업들에 밀려 저 멀리 구석에 아주 조그만한 냉장고 한 채와 그 옆의 진열장 두어줄.. 그곳에 전통주가 진열되어 있었다. 최근에 조주기능사 필기 시험을 봤던 우리는 전통주에도 관심이 꽤나 있는 터라(특히 나는 막걸리가 좋기도 하고) 두리번 두리번 살펴보았는데 평소 마트에서는 보기 힘든 전통주가 놓여져 있었다. 두견화(진달래꽃)로 만든 술이라고 해서 두견주 라던 그 꽃술! 먹어보고싶었던 술이라 냉큼 집어서 친정집으로 향했다.

 

 두견주에는 유명한 설화가 있다.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이 건강이 나빠져 그의 딸 영랑이 근심이 많았는데, 매일같이 면천 아미산에 올라 정성껏 기도를 드리던 영랑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아미산에 활짝 핀 두견화와 찹쌀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의 물로 빚어 아버지께 드리고 안샘 곁에 두 그루 은행나무를 심어 정성껏 기도하면 아버지의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하여 만들어진 술이라는 것이다. 고려의 복지겸이 누구지..? 하는 90년대 생이라면, 이 사진을 보면 기억이 날까 싶다. 태조 왕건의 복지겸.. 배신을 꺼리고 의리를 중요시하는 인물이라 꽤나 인기가 좋았던 기억이 난다.

 

KBS1 대하드라마 태조왕건의 복지겸 役 길용우님.

 아무튼 이 진달래꽃술이 공부하면서도 내내 참 궁금했는데, 매대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냉큼 가져와서 친정 식구들과 함께 나누어 마셨다. 마시기 전, 18도라고 쓰여진 것이 눈에 딱 띄어서 사실 굉장히 긴장하고 마셨다. 좋다 하는 약주나 전통주들은 대부분 이러저러한 것들이 들어가있어도 무언가 맛이 나는 소주나, 무언가 묘한 맛이 나는 청주 그 즈음이었기 때문에 18도라는 도수만으로도 소주스럽지 않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처음 맛본 두견주의 느낌은, 이게 18도라고? 였다. 마찬가지로 엄마도, 남편도 모두 18도는 커녕 10도도 안되게 느꼈다고 한다. 굉장히 달고 부드럽고 술의 강한 맛도 청주의 새콤함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뒤이어 넘어오는 진달래꽃의 은은하고 긴 피니쉬(라고 해도 되나 ㅎㅎ).. 그렇다고 해서 술이 물탄듯이 옅고 밍밍하지도 않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거다! 나 오늘 인생 전통주를 찾은것같다! 하는 그런 맛!! 굳이 아로마, 테이스트, 피니쉬를 나누어 설명하자면 아로마는 청주 그 자체이다. 은은한 꽃향과 꿀 향도 나긴 하지만 전체적인 향이 청주 베이스인게 탁 느껴질 정도로 청주의 향이 강하다. 테이스트는 꿀 그 자체. 혀를 감싸는 부드러운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마지막으로 피니쉬는 진달래꽃. 이름 그 자체이다. 은은하게 퍼지는 진달래의 달콤하고 향긋한 향.

 

 이렇게 열심히 설명하다보니 혹시 면천두견주보존회에서 광고를 받았다거나, 당진사람이라거나 하는 오해가 있을지 모르지만 정말 내돈내산 그 자체이다. 심지어 한병으로 아쉬워 인터넷 주문을 하려고 한다! 전통주라 인터넷 배송도 되니 게으른 나로서는 정말 이 술이 인생 술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돈내산 인증. 사실 두견주 말고 다른것도 많이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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