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친정집을 방문했을때, 면천두견주 말고 대단한 녀석을 구입했었다. 그 때 올렸던 영수증 아랫편에 적혀있어서 보이진 않았지만, 매대에 놓여진 수많은 발베니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다가, 그 옆에 있는 이 녀석을 보고는 '역시 서울은 다른데...?' 라고 생각했다. 여기선 발베니 12 더블우드도 없어서 못산다는데, 발베니 14 캐리비안 캐스크가 떡하니 매대에 놓여있었고, 그렇다고해서 모든 이의 카트에 놓여져있지도, 사람들이 줄서서 너도나도 사겠다고 아우성하지도 않았다. 어디선 편의점에서도 오픈런을 한다던데, 위스키의 공급과 수요는 당췌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이녀석을 구매하면서 남편이 한 말은, '위스키 잘 하는 집의 고숙성 위스키는 틀린적이 없지.' 라는 말이었다. 얼마전 먹었던 글렌피딕이 그랬고, 그 외의 몇몇 위스키들이 남편에게 그런 통계?를 심어줬나보다. 하지만 발베니를 리뷰하겠다는 내 말에 남편은 말했다. '그거? 좀 애매해. 14년은 딱히 고숙성이라고 하기도 뭣하고.' 라고.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잠실에서 신나서 이 술을 사가던 남편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아니, 기왕에 2년이나 더 숙성하고, 캐리비안이니 카리브해니 뭐 그런 캐스크에 숙성까지 했을 정도면 훨씬 맛있으면 얼마나 좋아. 돈도 80%가량 더 받으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글랜캐런에 코를 갖다댄다. 이거.. 어디서 많이 맡아본 향인데, 싶다. 오늘 저녁에 넛맥 향을 맡았었는데(개인적으로 넛맥은 오래된 통나무집 냄새 같았다.), 그거랑 비슷하긴 한데.. 뭐더라 이 향. 그리고 뭐더라, 하는 찰나에 지나가는 애플~ 그래, 너 위스키 맞구나. 처음엔 분명 좀 연필같기도 하고, 후추같기도 한 그런 향이 났다. 그런데 글을 적고, 테이스팅을 하겠다고 몇 번 젓다 보니 그 향은 사라지고 사과 향만 남았다. 뭐지, 이렇게 빨리 사라져도 되나.
아쉽지만 이내 맛을 본다. 오, 뭐야 생각보다 맛있는데? 달콤한 향이 입안으로 밀려 들어온다. 그리고 이내 사라져버리고 피트하다고 해야할지 조금 알싸하다고 해야할지.. 느낌만 오래 남는다. 이거, 뭐지. 다시 먹는다. 달달한 사과맛, 어 그리고 사라진다? 내가 뭔가 잘못됐나 싶어서 물만 200mL는 마신것 같다. 술먹고, 물먹고, 술먹고, 또 물먹고. 뭐야 이거! 맛이 있다, 있는데 없다. 아뇨 있는데, 없어요!
아니 이걸 누가 어땠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할까. 맛이 있다. 맛이 있는데, 맛이 없다고 해줘야 할까. 맛이 있긴 한데 화가 난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어케했누! 위스키라고 해야할까.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데 3분카레 스타일의 짧은 녀석을 만들었을까. 화가 나면 계속 주구장창 마시면 되나, 그게 맞나. 아무튼 더 화가 나기 전에 여기서 리뷰를 대충 마친다. 피니쉬는 없다고 해야지. 있긴 있는데.. 뭐 아무튼 없어요!
테이스팅 노트
색상 : 옅은 금색
아로마 : 연필, 나무, 후추, 코르크, 그리고 홀로 남은 사과.
테이스트 : 꿀, 사과, 토피, 아몬드, 근데 없어짐.
피니쉬 : 아주 짧고, 없다.
가격정보
보틀벙커 잠실 - 188,000원
달리 앱 - 193,900원
아 맞다,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 술은 비싸다. 188,000원주고 신기루같은 이 술을 마실바엔, 10만원선에서 적당히 발베니 12 더블우드랑 타협하자. 캐리비안 뭐시기 뭐 별거 없다, 아무튼 없다고!
*추가 정보
-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
- 캐리비안 캐스크 숙성(카리브해 캐스크숙성) : 위스키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증류 후 위스키의 풍미와 특징을 개발하기 위해 버번 럼을 담고있던 통나무를사용하여 위스키를 숙성함.
- 버번 럼(Burbon Rum) : 미국의 켄터키 주에서 생산되는 럼으로, 버번 위스키와 유사한 생산 방법과 규정을 따름. 진한 색상과 과일 풍미, 스파이시한 특징을 가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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