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보다보면 각종 술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종종 올라온다. 언젠가는 소주 9에 맥주 1을 섞은 소맥이 꿀처럼 달고 맛있다는 얘기가 한참을 돌고, 또 언젠가는 맥주에 거품을 많이 내서 따르면(일명 아이유식 맥주따르기_나의아저씨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가스가 미리 빠져서 마시는 사람의 속이 덜 불편하다는 얘기도 돌고. 그러니까 SNS에는, 무슨 옷이나 무슨 아이템이 유행한다는것 뿐만 아니라 술도 어떤게 유행하는 메타가 있는 것 같다.
이게 유행씩이나 됐는지 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요즘 심심치않게 '얼린 귤로 만든 위스키 온더락' 사진이 올라오는 걸 봤다. 귤을 통째로 얼려서 얼음처럼 놓고 위스키를 부어 마시면, 귤 향이 배면서 향긋해지고, 술이 차갑게 유지되면서 부드러운 단맛이 천천히 녹아든다는 이야기. 그리고 마찬가지로 사케도 그렇다고 한다. 조주기능사 시험을 준비할때, 실제로 레몬 다음으로 많이 썼던 가니쉬가 오렌지였기도 하고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이 술과 잘 어울린다는 것은 의심에 여지가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귤을 얼려서 넣는 것 만으로도 맛이 좋다니.. 꽤나 의심스러웠다.
마침 김장으로 시댁을 오가는 길에, 제주가 본가인 외숙모께서 귤을 한박스 주시길래 귤스키 생각이 났다. 남들 하는걸 다 따라해보진 못해도 이건 해볼만하지 싶어서, 귤을 몇개 까서 냉동고에 넣고 하루를 기다렸다.
하룻밤 새에 조막만한 귤들이 꽝꽝 얼었다. 얼어있는 귤을 보면서 '이게 뭐하는 짓이지' 싶은 마음이 머릿속을 살짝 스쳐갔지만 모른척 하고 온더락 글라스에 담았다. 술을 고르려고 남들은 무슨 술로 했나 좀 찾아보니 위스키가 나온 그럴싸한 글은 전부 글렌피딕 21년이었다. 아.. 속았다! 글렌피딕 21년은 그냥 안얼린 귤을 넣어서 먹어도 맛있겠잖아! 누군가 한명이 글렌피딕 21년을 마셨다고 자랑하려던 글에 모두가 속아서 SNS를 하고있구나!!
조금 억울했지만 글렌피딕 18년을 꺼냈다. 내가 21년은 없어도 18년은 자랑할 수 있쥐. 45ml를 붓고 3분을 기다려서 한 모금, 5분을 기다려서 한 모금, 다시 10분을 기다려서 한 모금 마셔보았다. 그냥 글렌피딕 맛이 참 좋다.귤은 흔적도 없다. 그럼 그렇지.
인내심은 줄어들고 취기는 올라서 30분간 집안일을 하다가 왔다. 온 방안에 글렌피딕 향이 퍼져있다. 귤 덕에 술은 아직도 시원한가? 마셔보니 그렇지만도 않다. 이젠 더이상 기다릴 것도 없겠다(시원하지 않다는건 다 녹을만큼 녹았단 뜻일 테니까) 그렇지만 귤 향은 나지 않는다. 화가 나서? 포크로 서너번 찔러서 휘저어본다. 의외로 안쪽은 귤 셔벗 상태. 서너번 찔러서 뒤집고 휘저은 걸로는 귤 맛이 나는거같지가 않아서, 또 5분 기다려본다. 나 참 이게 뭐하는거야 진짜 ㅋㅋㅋ
찌르고 뒤집으니, 조금 귤맛이 섞인것같다. 술에 아주 동동 담궈두었다가 마시는 것은 아니라서, 기대한 그런 맛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비추. 이 좋은 위스키가 끝맛은 텁텁하고 중간맛은 애매한 얼린 과일맛이 섞인다. 아주 대단한 걸 기대한것도 아닌데, 별로인 게 나왔다. 말하자면 인터넷에서 인플루언서가 판다는 미백크림을 큰 기대는 안하고 그냥 크림하나 살때가 되었지 하고 샀는데 생각보다 더 별로여서 얼굴에 뾰루지가 나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무튼 비추이다. 이 글이 내 블로그에 심심찮은 방문자를 만들어 내 줄 지는 모르겠지만.
모쪼록 유행까지 번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귤도 아깝고 위스키는 더 아까워서!!🍊
너무 아까우니까? 비터스라도 톡톡 뿌려서 마셔야겠다. 아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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