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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시기/꼬냑, 브랜디

오늘은 왠지 근사하고 싶어, 레미마틴 1738

by 영육이네 2023. 5. 8.

3일간 냉장고에서 뭘 하며 지냈니

 주말에 오픽 시험을 마치고, 비오는 거리를 걷다가 문득 그냥 나를 위한 레몬케잌 한 조각이 먹고싶었다. 그 길로 좋아하는 가게에 들러서, 나를 위한 케이크 한 조각을 사고 나와서 그 뒤로도 일상을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내 레몬케잌은 그대로 냉장고에 멍하니 3일을 앉아있게 됐다. 미안한 마음에 예쁜 그릇에 담고, 목이 길고 예쁜 꼬냑 글라스도 꺼냈다.

 말하자면 냉장고에서 3일을 버틴 레몬케잌에게도, 그걸 3일간 먹고싶던 나에게도 근사하고싶은 날이다 오늘은. 위스키를 마실까 하고(이와중에 블로그도 써보겠다며) 챗 지피티에게 이런 저런 술도 추천받았지만, 결국 우리집 챗지피티(a.k.a. 남편) 물었다. 나 레몬케잌 먹을건데 위스키 추천좀.

처음에 없는거만 3개 추천하길래 두번째 물었다, 달위니 15 / 글렌피딕 18 / 아란 10. 모두 있는거라 소름.

 남편은 포도향이 나는게 좋을것 같은데.. 라고만 반복하며 하던 게임을 마저 했다. 아, 와인 말고 위스키요! 그러자 말한다. 레미마틴이 좋겠다고.

 이 블로그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저 많은 위스키들을 먼저 끝내고 다른걸 다뤄보겠다는 암묵적인 순서 같은거. 그러니까 위스키 알려달라고 했는데. 남편은 단호했다. 레미마틴 1738, 아니면 피트향 위스키. 아, 나는 피트향 별로야.

 

 그러고 보니 이 술을 처음 사왔을때 남편이 호들갑을 떨며 후기를 쏟아냈던 게 기억이 난다. 이게 그렇게 맛있다고 했었지 참. 근사한 날을 위해서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케이크를 한 입 크기로 포크 위에 얹어놓고 술부터 코로 갖다대서 킁킁거려본다. 나 참 뭐 대단한 블로거 납셨다고 먹기 전부터 킁킁. 그런데 향이 좋다. 와 맨날 사과만 맡다가 포도향이 나니 굉장히 달달하고 새롭게 느껴진다. 꽃향도 나고, 단내도 진동하고. 입에 넣자마자 오오 이건 포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나타나서 웃는다. 그거, 맛있지? 하고. 위스키보다 훨씬 알콜도 안남고 포도향이 처음부터 끝까지 균일하다. 아, '파인상파뉴'란 이런것인가..! 은은하고 균일하게 지속적인 포도향에 오래 남는 꽃향.. 위스키랑 전혀 다른 친구다. 아, 인정하기 싫지만 먹길 잘했네.  몇번 홀짝 거리며 테이스팅 노트를 완성하고, 드디어 술 한 입, 레몬케잌 한 입. 포도에서 레몬으로 그리고 그 끝에 계란의 고소함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자연스럽다. 뭐랄까 되게.. 이런 표현 너무 웃기고 쑥스럽지만 노란색이랑 보라색으로 잘 그린 그림 한폭같다. 아니 내가 이런 낯간지러운 후기를 쓰고있다고? 조금 더 먹다보니 사이사이에 다른 맛들이 껴든다. 포도 > 피트 > 레몬 > 크림 > 계란. 어, 나 피트 좋은데 지금.

온 병과 박스에 도배된 파인상파뉴.. 알았다고, 진정해.

 아까 잠깐 말했지만, 이 술은 '파인 상파뉴(Fine Champagne)' 이다. Fine한 샴페인 아니고, 파인 상파뉴 라고 읽어야 뭐 좀 된다. 짧게 설명하자면, 고급 브랜디라는것. 길게 설명해보자면, 꼬냑(Cognac) 지방의 그랑 상파뉴(Grand Champagne) 지역과 쁘띠 상파뉴(Petit Champagne) 지역의 원료만을 사용하여 제조한 꼬냑이라는 뜻이다. 그랑 상파뉴 원액 50% 이상, 나머지 50% 미만은 쁘띠상파뉴 원액을 사용하는걸로 알려져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파인상파뉴>그랑상파뉴>쁘띠상파뉴 급으로 좋다는 뜻.

 

오늘의 상식은 이쯤 하고. 남은 파인상파뉴 님과 레몬 케이크 조지러 가야겠다. 오늘 아주 만족스러워, 고마워 남편지피티!

 

테이스팅 노트

색상 : 앰버 골드

아로마 : 포도, 꿀, 꽃향

테이스트 : 포도, 꿀, 피트, 사과 약간.

피니쉬 : 길고, 꽃향이 지배적이며 포도향이 섞여있음.

 

가격정보

롯데마트(용암점) 119,000원 / 2023-04-11 기준. 구하기 힘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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